남녘땅에서 '행복하다' 믿는다면, 도둑 아니면 바보
2008년 12월 5일자 프레시안 기사로 나왔던 [조세희 "행복한가? 당신은 ‘도둑’ 아니면 ‘바보’요"]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92227)를 짧게 줄여 옮긴다.
(조세희(趙世熙, 1942-2022) 선생의 2008년 12월 3일 서울 노원구 서울북구고용지원센터 대강당 강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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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 선생은 "우리는 불행으로 동맹을 맺었다"고 말했다.
"이 땅에서 바로 이 시간에 ‘행복하다’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음 두 부류 중 하나다. 하나는 도둑, 하나는 바보다."
거대한 삽차로 때려 부수고 각목 든 깡패들 동원해 사람들을 밀어내던 시대는 "옛 일이 되었다"고 믿고 있을지 모르나, 우리는 ”정작 아주 슬픈 시대에 왔다."
"앞선 세 세대가 그토록 열심히 일했지만 이 조국이 그렇게 좋은 나라는 못 됐다. 어른들이 세계 최장시간 중노동을 하며 이 나라를 만들어 왔다. 그랬으면 우리는 지금쯤 락원에 도착해 있어야 하는데 정작 아주 슬픈 시대에 왔다."
"우리 시대의 '난장이' 비정규직"을 만났고 "써야 하는데 마음이 너무 아파" 글을 못 썼다고 한다.
"한 번은 집회에 갔다가 자기 아이를 데리고 나온 한 아버지를 만났다. 3년이나 투쟁했다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는데 그이가 '투쟁하는 동안 부인과도 헤어지고 어느 날 집에 가니 아이 셋이 바싹 말라비틀어진 김치에 한 공기도 안 되는 밥을 나눠 먹고 있었다. 긴 투쟁 끝에 돈도 한 푼 없는데 그때 내가 어땠겠는가' 했다."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 중 상당수가 아직도 공부도 많이 하고 가진 게 많은 부자들이 나라 일을 잘 볼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래서 뽑아주면 그 부자들은 저희들 5%나 20%를 위한 정책을 편다. 나머지 80%나 95%가 죽어나가도 관심도 없다."
"이 시간부터 우리 가슴에 철 기둥 하나씩을 심어 넣자."
"무슨 일이 있어도 쓰러지지 않을 철 기둥을 박아두고 어떤 어려움이 와도 버텨내면서 빛이 보이는 곳으로 달려가야 한다."
"우리가 지금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한참 더 길게 길게 끌려 다녀야 한다."
"력사에서는 절대 생략이 없"으니 "이 징검다리를 생략하고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 탐욕 정치가와 재벌, 부정 관료의 세상에서 갑자기 기가 막힌 락원에 도착할 수는 없다. 거쳐야 할 길을 거쳐야 한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이 땅에서 져야 할 무거운 짐이 아주 많다."
"조국을 구하기 위해 일어선 이 땅의 옛날 의병은 한 번 죽어서는 곧바로 저 세상으로 갈 수가 없었다. 몽고군에게 죽고, 관군에게도 죽고... 일본군에게 죽고…. 한 의병이 열 번 죽고 몇 십 번부상을 당하고 구천을 떠돌다가 간신히 고향으로 돌아가 누웠다. <하얀 저고리>에 나오는 얘기다."
"우리 늙은이들은 조금 더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만, 젊은이들에게는 미래가 달려 있다.“
"젊은이들이 절대로 깜깜한 세상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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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으로 동맹을 맺은" 이곳 남녘땅에서 '행복하다' 믿는다면 도둑이거나 바보일진대,
젊은이들이 깜깜한 세상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의 이 믿음,
현실로 이뤄내자면 어찌 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