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세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당신은 쏘고 있소 비난의 화살을 나의 눈 나의 시에
세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돌고 돌아서
밤의 세계가 낮의 세계로 되고
태양의 세계가 달의 세계로 되어
어두운 데가 있으면 밝은 데가 있기 마련인데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법칙이고 신의 섭리인데
내가 자연의 법칙과 신의 섭리를 배반하고
어두운 데는 보되 밝은 데는 보지 않는다고
인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배와 같아서
작은 배가 있으면 큰 배도 있고
큰 배가 있으면 작은 배도 있어
작은 배는 적게 먹고 큰 배는 많이 먹기 마련인데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법칙이고 신의 섭리인데
내가 자연의 법칙과 신의 섭리를 배반하고
작은 배는 노래하되 큰 배는 노래하지 않는다고
당신은 쏘고 있소 비난의 화살을 나의 눈 나의 시에
옳소 당신의 비난이 천번 만번 옳소
세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돌고 돌아서
그늘진 데가 있으면 양지바른 데가 있기 마련이고
양지바른 데가 있으면 그늘진 데가 있는 법인데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법칙이고 신의 섭리인데
나는 그 동안 석삼년 동안 자연과 신을 배반하고
그늘진 데는 보았으되 양지바른 데는 보지 못했으니
나의 눈은 당신이 쏜 화살을 맞아 애꾸눈이 되어도 싸요
옳소 당신의 비난이 천번 만번 옳소
인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배와 같아서
뚱뚱한 배가 있으면 홀쪽한 배가 있기 마련이고
홀쪽한 배가 있으면 뚱뚱한 배가 있기 마련인데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법칙이고 신의 섭리인데
나는 그 동안 석삼년 동안 자연과 신을 배반하고
홀쪽한 배는 노래하고 뚱뚱한 배는 노래하지 않았으니
나의 시는 당신이 쏜 화살에 맞아 구멍투성이의 시가 되어도 싸요
그러나 이제 거두시오 비난의 화살일랑 당신의
화살을 맞고 내 눈이 애꾸눈이 안되기 위해서라도 당신의
화살을 맞고 내 시가 구멍투성이의 시가 안되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제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겠소
어두운 데만 보고 밝은 데는 보지 않는 그런 눈은 가지지 않겠소
긍정적인 것은 노래하지 않고 부정적인 것만 노래하는 그런 시는 쓰지 않겠소
가령 이렇게 하겠소 앞으로는
세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늙은 창부의 사타구니 같아서
겉이고 속이고 썩어 문드러져 있는데
부자집 오물통에는 싱싱한 과일이 둥둥 떠다니고
수채구멍으로는 맑고 맑은 물이 콸콸 흐르는도다
인간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계급과 같아서
늙은 광부는 열 길 스무 길 땅속 깊은 굴에서
검은 땀 뻘뻘 흘리면서 가쁜 숨 헉헉 내쉬면서
일당 몇 천원의 석탄 백탄을 캐는데
부자집 청춘남녀는 십층 이십층 고층 빌딩 스카이라운지에서
봄바람 밤바람에 머리카락 날리면서
한 잔에 몇 만원하는 술잔을 기울이는도다
당시 인간 리완용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라를 통째로 팔아먹은 매국노의 제일인자이기는 했으되
사고무친 기생을 애첩으로 삼아
한 살림 크게 차려주는 박애주의자이기도 했도다
다시 인간 전아무개로 말할 것 같으면 수천 시민을
쏘아 죽이고 찔러 죽이고 쑤셔 죽이고 때려 죽인 흉악무도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는 했으되
대통령의 신분으로 한갓 천민의 집에까지 친히 찾아가
유괴당한 소녀의 가족을 위로하고 눈물까지 지어 보이는 갸륵한 어른이기도 했도다
뿐만 아니라 경찰관 누구누구로 말할 것 같으면
남의 집 처녀를 성고문한 야수와 같은 치한이기는 했으되
자기 집 딸이 어쩌다 하루 밤 늦도록 들어오지 않으면
딸아이 교육을 어떻게 시키느냐고 아내에게 나무라는 엄격한 아버지이기도 했도다
어떻소 당신 이 정도면 되겠소
이 정도면 나도 정부가 그 품질은 보증하는
순수시인들 축에 끼겠소!
("세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조국은 하나다」, 도서출판 南風, 1988, 216-218쪽)
(19세기말, 20세기초, 米帝, 러시아제국, 日帝에 차례로 부역(附逆)했던 ‘이완용’(1858-1926)을 "리완용"으로 바꾸어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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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삼년 9년 넘도록 감옥에서 전사(戰士)로서 싸우는 중에,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 神의 섭리를 말하는 가운데,
한 번 두 번 비틀어내는 김남주 시인의 감각이 묻어난다.
30여년 지난 남녘땅,
기댈 곳 없는 조손(祖孫)가정 할머니는 손녀 수술비 걱정에 속이 타고,
젊은이는 일하다 얼어 죽고, 월세를 못내다가 굶어 죽는데,
괴물처럼 뾰족한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 지하주차장에는
수입 supercar들이 빽빽이 들어서있다.
느낌은 다르겠지만, 따라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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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에 강제동원되었던 이들에게 한껏 모욕감 안기고서,
자신은 쪽발이들과 이 술 저 술 한껏 말아 들이켰도다!
수십조 米帝 고물무기 들여오면서,
米帝 본토 때릴 핵무기 가진 북녘 동포(同胞) 향해 미친 개마냥 욕지거리 퍼부으면서,
개표조작 양키놈 앞에서 양키놈들 노래 처불렀도다!
대궁민담화 고개숙이는 척 하다가,
원래 하던대로 반말 찍찍!
되도 않는 술, 노래, 반말 찍찍,
자랑찬 꼭두각시!
이 정도면 양키놈, 쪽발이들 앞에서,
순수광대 축에 끼지 않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