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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想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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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밑을 채우시라 수 년 전, 가장 아끼는 친구의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OO氏, "코 밑을 채우라" 했습니다. 코 밑을 채우세요." 그 때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서 여쭈지도 않았다. 그 어머님께서 더 풀어 말씀하신 것도 아니었다.이후 간간이 그 말씀이 떠오를 때마다 조금씩 곱씹어 보았고 그만큼 가슴에 쌓여온 듯하다. 그러다 어제 새벽 다시 곱씹게 되었다."코 밑을 채우라" 함은 "코 밑까지 채우라"는 뜻일테다.그렇다면 무엇을?"코 밑까지 채워야 할 바를!" 응당 코 밑까지 채워야 할 것을 코 밑까지 채우라는 말이라고 하면,그것이 무엇일지, 어떻게 채워갈지는,역시 저마다 알아내고 선택하여 결행(決行)해야 할 것이다. ----------------------------------------------..
너만 잘 하면 된다 먼저 내가 잘 해야 하고, 내가 잘 되어야 한다.이 世上이 어찌 되든, 곧 亡하여 없어지든, 그런 것은 신경쓰지 마라.世上이 어찌 되든, 그런 건 내려놓아라."너만 잘 하면 된다.""너만 잘 되면 된다." 리기적(利己的)인 말로 들릴 수 있으나, 그런 것이 아니라,世上이 바뀌길 바라지 말고, 그러기 전에,자신을 스스로 바꾸라는 말이다. 주제넘게 누구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필자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이 곳에 글 쓰는 것도, 일차적으로 필자 자신을 위한 것이다.이차적, 삼차적 효과나 영향이 있을지, 얼마나 있을지,필자는 알지 못한다.그건 필자 소관(所管)이 아니다. 이렇게라도 쓰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쓰는 것이다.
미치지않았다면 원인을없앨것결과를바꾸자면원인을바꿀것원인을없애지않고결과를없애려한다면원인을바꾸지않고결과를바꾸려한다면돌아버렸다는증거혹은 곧돌아버리게됨결과를없애거나바꾸자면원인을없애거나바꿀것미치지않으려면바꿔
山처럼 부어오른 깨구락지 배때기도 이 세상에서, 이 '멋들어진' 남녘땅에서, 자타칭 '富하고 貴하게 된' 자들은 '너희들은 이렇지 못하니 내가 이룬 것을 두고 뜬구름이라 하며 스스로 위안 삼는 것 아니냐'고 말할 지 모른다. 그러나 人生은 생각보다 짧고 時間은 쏜살처럼 흐른다. 세상끝에서 마지막 숨을 내뱉을 때 그렇게 이뤘던 富貴가 그들에게 죽기 직전 위안(慰安)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 毒'백신'을 구실로 한 집단살인(集團殺人), '정부'를 참칭하며 돈뜯어 코쟁이 양놈 상전(上典) 갖다바치는 마름 노릇, '자살(自殺)' 가장(假裝) 殺人과 개표조작(開票造作)이 횡행(橫行)하는 가운데서도 미친놈 연신 잠꼬대 하듯 '민주주의'니 '자유'니 역겹고 미친 거짓말들을 줴쳐대는 가학증(加虐症)과 피학증(被虐症), '사고(事故)'를 假裝한 학살(虐..
"알곡"과 "쭉정이" 2024년 올해도 세 달이 지나가고 있다. 누구에게든 점점, 조금씩, 저마다 다른 속도로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알곡과 쭉정이로 이 세상 것들을 비유해본다. "쭉정이"란 껍질만 있고 속에 알맹이가 들어있지 않은 곡식(穀食)이나 과일 따위의 열매를 말한다. 껍질만 있고 알맹이가 없는 가짜란 말이다. 쓸모없게 되어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者를 비유하기도 한단다. "알곡"이란, 그런 쭉정이 또는 잡(雜)것이 섞이지 않은, 속이 꽉 찬 낟알, 알찬 穀食을 말한다. 거짓이 아닌, 진짜배기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야 할 길, 우리가 살아날 길은 分明하다. 나날의 우리 삶에서, 껍질뿐인, 가짜인, 쭉정이들을 가려 쳐내고, 속이 들어찬, 진짜배기 알곡을 하나하나 챙겨 거둬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 뻔한..
'공짜'란 없으니 이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懦弱했다면, 卑怯했으면, 因循姑息과 彌縫을 일삼았다면, '몸나'에 執着했다면, 그 代價를 치루어야만 한다. 나약함의 代價, 비겁함의 代價, 속임수와 참을 가려보려 하지 않고 당장의 거짓 '편안함'을 취해온 代價, '몸나' 두려움에 제 머리로 생각하거나 그에 따라 용감하게 행동하지 않은 代價, 많은 이들 따르는 길을 그저 함께 따르려 했던 安逸함의 代價, 거짓을 거짓으로 무마하고 잘못된 것을 이리저리 꾸며붙여 넘겨온 代價, '몸나'에 집착해온 代價, 그 모든 代價가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이 悽絶한 현실이다. 누군가에게는 처참함으로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달콤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허나, 이 말못하게 일그러진 현실이 대가치름없이 그저 누그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말없이 굴종하는 게 求道인가? 얼마전부터 다시 조금 늘어나기 시작한 마스크(mask) 쓴 얼굴들 - 얼굴 아닌 얼굴들 - 을 보시라. (재작년, 작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마스크 써온 자들은 제외하고라도) 여름철임에도 거리에 다시 mask쓴 얼굴들이 약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대중매체를 통해 쏟아내는 저들의 선전에 다시 속은 것이라면 어렵지 않게 설명된다. 이곳 남녘땅 사람들은 어찌 이리 무턱대고 거짓말에 속는가? 어찌 이리 헛똑똑이들인가? 지금까지 이렇게 당하고도 당했다고 느끼지 못하는가? 각종 상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혹은 택시기사 분들에게, 왜 mask 쓰고 있느냐 물어보면, 몇몇 대답하길, 손님들을 위해서란다. 아직 순진한 초등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엄마가 쓰라고 했단다. 정말 손님들을 위해서 mask를 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