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來 漢字가 없는 原文의 몇몇 單語에 漢字를 병기(竝記)하였다. 정음(正音)과 漢字를 竝記하는 혼용표기(混用表記)를 장려(奬勵)하기 위한 일환(一環)이다. 반복되는 단어는 일차 竝記 이후 漢字로만 옮긴다.)
("노동", "노동자", "약탈"을 "로동(勞動)", "로동자(勞動者)", "략탈(掠奪)"로 바꾸어 쓴다. 이는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 중 하나인) 그 무슨 '두음법칙'을 '법칙'으로 인정하기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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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팔선(三八線)은 三八線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부(漁夫)가 그물을 던지다 탐조등(探照燈)에 눈이 먼 바다에도 있고
나무꾼이 더는 오르지 못하는 입산금지의 팻말에도 있고
동백꽃 까맣게 멍드는 남쪽 마을 하늘에도 있다
三八線은 三八線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든 길에도 있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모든 말에도 있고
수상(殊常)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신고하는
이웃집 아저씨의 거동에도 있다
三八線은 三八線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뜨는 해와 함께 일어나고
지는 달과 함께 자며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의 팍팍한 가슴에도 있고
제 로동(勞動)으로 하루를 살고 이틀을 살고
한 사람의 평등한 인간이고자 고개를 쳐들면
결정적으로 꺾이고 마는 로동자(勞動者)의 허리에도 있다
어디 그뿐이랴 三八線은
농부의 가슴에만 勞動者의 허리에만 있으랴
그 가슴 그 허리 위에 거재(巨財)를 쌓아올리고
아무도 얼씬 못하게 철가시를 꽂아놓는 부자들의 담에도 있고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자유를 혼란으로 바꿔치기하는
패자들의 남침위협 공갈협박에도 있다
나라가 온통 피묻은 자유로 몸부림치는 창살
三八線은 나라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 밖에도 있다
바다 건너 마천루(摩天樓)의 나라 미국(未國/迷國)에도 있고
살인(殺人)과 략탈(掠奪)과 방화(放火)로 달라를 긁어모으는 그들의 군수산업(軍需産業)에도 있고
그들이 북(北)으로 날리는 위장(僞裝)된 평화의 비둘기에도 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칼 나의 피」, 실천문학사, 1988(1993), 6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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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詩에는, <쓰다 만 시>, <다 쓴 시>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김남주 시인의 다른 모든 詩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들의 비겁(卑怯)을 깨뜨리게 하는 사상(思想)과 정서(情緖)가 생생하게 묻어있다.
눈으로 읽고, 소리내어 읽고, 마음으로도 읽어,
그로써 우리 자신의 卑怯을 깨뜨리는 데에 도움이 된다.
"패자들"의 "패자"가 霸者인지, 아니면 敗者를 뜻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느 쪽이든 그들은, 농부와 로동자들의 고개와 가슴과 허리를 꺾어 巨財를 쌓아올린 사팔뜨기 부자들과 한통속이 되어 "자유를 혼란으로 바꿔치기"하며 툭하면 거짓 "남침위협 공갈협박"을 해대는 족속들이다. 상전(上典) 미국(米國/未國/迷國) 양키들의 가랑이 밑을 기어다니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자들이다.
(미국(米國/未國/迷國)의 군대가 점령군(占領軍)으로 남녘땅에 발을 들인 1945년 9월 8일 이후 지금 이 순간까지 80년 가까이, 이곳 갈라진 반도조선(半島朝鮮)에서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남침위협'이 아니라 "북침위협"이 단 한 순간도 끊김없이 이어져 왔다는 점이다. 1950-1953년 전쟁은 저들이 계획하여 유발(誘發)한 전쟁으로서, 이에 대한 北의 대응은, 저들의 술수(術數)에 말려들었던 측면이 있다. 1950년 이전을 보자면, 1948년 8월/9월이 되어 남과 북에 각기 단독정부가 들어선 이후 주둔미군(駐屯米軍)에 올라타서 북녘에 침투하는 도발을 수없이 저질러온 남녘 꼭두각시 '정부'의 '북진통일' 선전에 맞서, 1950-1953년 전쟁 이후로는,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停戰協定) 이래 줄곧 남녘땅 駐屯米軍을 앞세운 저들의 북침위협에 맞서, 사냥감 물어뜯어 입가에 피묻은 승냥이같은 그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北은 정당방위(正當防衛)을 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을 쓸 때 차마 美란 글자를 쓸 수는 없다. 그리 한다면 그것은 역겨운 거짓이요 良心을 저버리는 일이다.
殺人(1950-1953년 전쟁이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면, 저들이 최근 유럽과 중동에서 벌여오고 있는 전쟁(戰爭)/학살(虐殺)행각을 보시라)과,
掠奪(1997-1998 '외환위기'때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 이 순간까지 저들이 남녘땅 인민들 흘린 피땀의 결과물과 온갖 재부(財富)를 구조적으로 빼앗아오고 있는 현실을 보시라 -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과,
放火(저들이 남녘땅과 전세계 곳곳에 제멋대로(그러나 물론 나름의 계획 아래) 그 무슨 (원인 불명(不明)의) '사고(事故)'니 '산불'이니 속여가며 실제로는 의도적으로 공격하고 파괴(破壞)하면서도 끝없이 이어지는 거짓으로 극도의 혼란과 집단 정신착란(精神錯亂)을 부추겨왔음을 보시라)로,
피묻은 돈을 긁어모으고, 근거없는 돈(위 詩 속의 "달라"(dollar))을 제멋대로 찍어내 그것으로 戰爭/虐殺/掠奪을 일삼는 저들일진대,
저들이 부리는 괴물 숙주(宿主)를 두고 '아름답다'고 일컫는 것은,
정신병을 넘어 사람으로 남기를 포기(抛棄)함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다.
인민들이 살아갈 터전이 아님[未國]은 물론이요,
악마(惡魔)가 쉴새없이 뻗쳐내는 미혹(迷惑)과 破壞의 도구[迷國]이기에,
미국은 未國이요 迷國인 것이다.
김남주 시인이 아직 감옥(監獄)에 있을 때인 1980년대에 쓰여졌으므로 거의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 詩가 당시에 지적하던 현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대로라는 점은,
새삼 등골을 서늘하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남녘땅 우리는 어찌 해야 하겠는가?
惡魔의 下手人 '대한민국' '정부'가 거짓말하는대로 처맞으란대로,
독주사 '백신' 처맞고서,
거짓으로 세뇌시키고 바보만드는 TV와 'smartphone'에 두눈 처박은 채로,
반쯤 정신나간 '이웃집 사람'이 아니라,
殊常한 사람, 올곧이 정신차린 殊常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거짓을 거짓으로 알아보고
거짓을 참으로 물리치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어이없게도,
殊常한 사람,
참으로 殊常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未國을 몰아내고
三八線을 걷어내어,
반신불수가 제몸으로 돌아오고
사팔뜨기가 제눈으로 돌아와,
허리펴고 가슴펴고 고개들어 하늘보고 사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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