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날이다
령하 20도 혹한의 겨울
뼈를 깎는 톱니바퀴의 공장에서
맨살에 홑옷의 우리 로동자들이
혹사당하던 날이다 썩은 호박죽에 주린 배를 채우며
오늘은 그날이다 감옥에서
간수가 죄수를 부려먹듯 공장에서
감독이 로동자를 부려먹던 날이다 그 무렵 우리에게는
외출의 자유도 없었고 먼 고향 두메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찾아와도 만나뵐 수가 없었다
오늘은 그날이다 순이가
밤낮없는 로동에 지쳐 깜박 졸다가
공장장의 발길질에 저만큼 나동그라지던 날이고 영양실조로
영숙이와 길례가 시멘트 바닥에 꼬꾸라지던 날이고
순임이는 끝내 피를 토하고 시골로 내려가던 날이다
오늘은 그날이다 일요일에
메이데이 행사에 참가했다는 리유로
다섯 명의 동료들이 경찰에 붙들려간 날이고
전평에서 탈퇴하여 대한노총에 가입하라 협박받던 날이고
협박에 지지않는 이는 빨갱이로 몰려
어딘가로 찦차에 실려 련행돼갔던 날이다
“더이상 참을 수 없다 파업이다!” 외치며
들고 일어선 날이다 오늘은
“야근철폐 8시간 로동제” 이것이 우리들의 요구였다
“식사개선 최저임금제” 이것이 우리들의 인간선언
“대한노총은 로동자들을 리승만의 종으로 만들지 말라”
이것이 우리들의 구호였다
삼삼오오 어깨동무를 하고 우리 로동자들은
공장 안에서 롱성을 하였다 굶주림과
추위가 우리들의 옷과 밥이었고, 단식과
형제애의 련대가 우리들의 무기였다
오늘은 그날이다
일제 트럭이 아니라 이제
미제 트럭이 공장에 경찰을 투입하던 날이다
미군이 우리 로동자의 입에
소방호스로 양잿물을 퍼먹이던 날이고
강제로 트럭에 태워 폭우가 쏟아지던 한데에다
쓰레기를 버리듯 인간을 버리던 날이다
오늘은 그날이다
해방의 날로서 8·15가 끝장났던 날이다
평화적인 싸움이 끝났던 날이고 이제
새로운 피의 전투가 시작되던 날이다
("오늘은 그날이다 2" 「조국은 하나다」, 도서출판 南風, 1988, 212-213쪽)
(‘영하’를 ”령하“(零下)로, ‘노동’을 ”로동(勞動)“, ‘이유’를 ”리유(理由)“, ‘연행’을 ”련행(連行)“, 미제(米帝)의 개 ‘이승만’을 ”리승만“, ‘농성’을 ”롱성(籠城)“, ‘연대’를 ”련대(連帶)“로 바꾸어 옮겼다.)
(‘대한노총’은 ‘대한민국’체제에 복속했던 어용(御用)이었으므로 ‘대한민국’ 것들 중의 하나로 박제(剝製)하는 뜻으로 ”대한로총“이라 바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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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에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朝鮮勞動組合全國評議會)"("전평"), 3연에서 '해방의 날' 8·15가 끝장났음을 말한 점, 그리고 전체 내용을 볼 때 이 시는 1945년부터 1948년까지 남녘땅 로동자들이 처했던 현실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후과(後果)는 여전히 남아있다. 형태와 명칭은 바뀌었어도 그 비인간적 구조는 오늘 이 순간까지 줄기차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조세희 선생은 "비규정직" 로동자들을 우리 시대 "난장이"라고 하셨다.
썩은 호박죽으로 주린 배를 채워야 했던 그들을 찾아오신 부모님,
먼 고향 두메에서 찾아오신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뵐 수 없었던 그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끝내 피를 토하고 시골로 내려가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미군 찦차로 실려가서 두들겨맞고 폭우 속에 버려지게 되었어도
단식(斷食)과 형제애(兄弟愛)로 뭉쳐싸웠던 이들이었다.
일제(日帝) 트럭 대신 미제(米帝) 트럭이 공장에 경찰을 투입하고
미군이 우리 로동자 입에 洋잿물을 퍼먹여 쓰레기 버리듯 그들을 버렸다 함은
갈라진 남녘땅이 이제 米帝 식민지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니 8·15는 米帝에 의해 짓밟혀, 더이상 '해방의 날'이 아니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현재진행형인 사실이다.
피의 전투가 시작되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반드시 피를 흘리며 싸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허나, 피를 흘리든 흘리지 않든,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갈라진 남녘땅 우리가 발딛고 선 이곳은 아직 解放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朝鮮勞動組合
全國評議會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朝鮮勞動組合全國評議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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